2019/06/12 04:30

회사가기싫어 9화 [무엇이 우리를 열일하게 하는가] #6. 드라마


KBS2 화요일 23시 10분 방영되는 회사가기싫어 9화 "무엇이 우리를 열일하게 하는가" 

문득 대학생 때 연구원 인턴으로 잠시 일을 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때가 하필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즌이었는데. 일에 구분 없이 함께 일을 하던 선생님들이 알게 모르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충격을 받았지만. 그 당시 비정규직 그룹 중 몇몇은 정규직 전환의 환희를 맛보았으나 탈락한 누군가들은 탕비실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서럽게 울던 그 모습을 봐버린 그 날. 

그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스팩들을 쌓아서 죽어라 정규직에 들어가야겠다라고 다짐을 하며 살떨리는 그 시기를 남의 일로 치부하며 관망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정규직이 최대의 꿈이 되어 유학까지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나는 생각한다. 비정규직으로 입사를 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어쩌면 나의 미래의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젠 뭐 화도 안나요.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뭐. 이 출입증만 봐도 알수 있잖아요. 정규직은 파란색, 비정규직은 빨간색. 조선시대 호패 같은거죠 뭐. - 조현철 계약직 디자인부서원 역 (여회현 배우님)

비정규직하고 정규직 제일 큰 차이점이 그거거든요. 내일을 계획하고 꿈꿀 수 있다는거. - 조현철 계약직 디자인부서원 역 (여회현 배우님)
이 드라마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을 세계 각국과 비교를 했는데(OECD 국가 중 임시직 3년 후 정규직 전환율) 무려. 한국이 최하위였다.(22%) 놀라웠던건 EU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독일 경제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그리스(36%)보다도 정규직 전환율의 퍼센테이지가 낮았다는 부분이었다. 3년간 한 곳에서 죽어라 일을 해도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정규직으로 변환이 될 가능성은 5명중 1명이 간신히 된다는게.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잠시 뻘소리지만 회사가기싫어의 강점은 그냥 이게 작가진이 만든 상상의 상황이 아닌 이게 현실의 모습이라는 점을 여러 수치까지 센스있게 추가해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혼인율이 저조하다 뭐다 저출산이다 뭐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도 공고해져 버린 비정규직 시스템이다. 그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사실 내일을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희망마저 걷어 차여버린 채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청년층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짝 더 문제를 제기한다.

아니지. 존버한다고 다 정규직 시켜주면 경우에 따라서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니깐. 우리 다 힘겨운 입시난과 취업난을 뚫고 공채로 들어왔자나. 4년제라는 거 다 필요 없어요. 2년제 가서 기술을 배워야지 - 박상욱 대리 역 (김중돈 배우님) 

요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이는 또 다른 불평등이라는 이야기이다. 
정규직은 입시난, 취업난 열심히 뚫느라 죽어라 노력했고 어쩌면 서로 고만고만한 이들끼리의 강도높은 경쟁 와중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그룹이다. IMF 이후 취업생태계가 변화하다보니 발생한 비정규직 구조는 왈가왈부해도 벌써 20여년이 넘어가고 있는것이 사실이고. 그 어렵다는 정규직 타이틀을 딴 이들의 볼맨소리도 씁쓸하지만 그냥 넘겨버리기가 힘든게 사실이다.
(정규직이라는게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알량한 권력일 뿐일지는 모른다며 자조할 수 있지만. 그 알량한 권력이라고 치부되기엔 또 무게감이 너무 있는.)

(정규직으로 올라갈수 있다는 말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 조현철 계약직 디자인부서원 역 (여회현 배우님)

비난의 화살을 누구에게 저격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세상. 그 와중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경계를 하고, 위에 있는 또 다른 그룹의 그들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 하더라도 외면하고 있을 것이라는것. 그리고 이러한 사회 속에 속해있는 내 자신. 참 앞이 깜깜하다.

드라마틱하게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오퍼를 받는것은 현실에서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정말 드라마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에게 이번 주제의 끝이 너무도 씁쓸하다.  

그냥 단순히 드라마를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하다가. 도저히 글을 안쓸수가 없게 만드는 마성의 드라마. 회사가기싫어. 나는 또 다음주에 드라마를 보고 또 피곤을 무릅쓰고 또 컴퓨터를 켜고 뭐라도 끄적거리고 있겠지. 짧은 미니시리즈이다 보니 남은 회차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게 보여서 아쉬울 뿐이다. 뭔가 너무 귀하고 맛있는 초콜렛을 단지에서 하나하나 꺼내먹는 기분이다. 그 초콜렛이 다 떨어지면 얼마나 아쉬울런지. 벌써부터 맘이 아리네. 

덧) 오늘의 회차에서 공감을 더 많이 느꼈던 이유는 조현철 계약직님의 역할을 맡으신 여회현 배우님의 연기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차별을 받으면서도 이제는 담담해 졌다고 하면서도 씁쓸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정규직 전환이 무산되었을 때의 그 좌절감을 큰 표정변화나 리액션 없이도 너무도 절절하게 보여주셨다. 다음에 어떤 매체에서이든 간에 또 다시 보고 싶은 배우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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