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챙겨보던 JTBC의 차이나는클라스에 김누리교수님께서 강연자로 나오셨다. 김누리교수님의 수업은 언제나 듣고 싶었지만 결국은 못듣곤 했었는데 이렇게 TV에서 강연을 해주시다니. 매번 차이나는클라스를 통해서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듣곤 했는데 이번에 김누리교수님 편은 다른 느낌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2편으로 나누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독일의 민주주의를 비교해주시는 편과 독일의 정치와 통일을 통한 우리나라의 시사점에 대해서 강의를 진행해주셨는데 두 편 모두 많은 공감과 새로운 시선을 배울 수 있는 귀한 강의였다.
민주주의자가 없는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이 한마디가 차이나는클라스 김누리교수님 1편을 관통하는 주요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크게 정치, 사회, 경제 민주주의로 나눌 수 있는데 문제는 한국의 80년대 민주화물결을 통해 치열하게 얻어낸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였고 이를 손에 얻으면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는 달콤한 상상에 취해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다가서지 못했다는 그 냉철한 시각은 독일과 비교가 되면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2편에서 더 살벌한 이야기. 현재의 한국은 수구와 보수의 싸움이라는 점. 그렇다. 한국이 진보대통령이라고 이야기 하며 이리저리 비난과 혹은 추앙(?)이 뒤섞겨 있지만 결국의 한국의 정치생태계는 수구와 보수의 싸움이었다는 점은 내가 왜 한국의 정치생태계에 냉소적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정의내려주는 기분이었다.
한국은 야생동물(!)이 득실거리는 자본주의이고 어떠한 사회적 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다 자기가 못나서 자기가 경쟁력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자기착취적인 삶을 살고 있다. 무려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말도 안되는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외부의 채찍이 아닌 내 자신의 채찍으로 자신을 착취시키며 이에 점점 지쳐가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행복을 전혀 느끼며 살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의 우울증이 만연한 나라. 희망조차 없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경제 사회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바로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젠장. 그렇게 한국인들이 추앙해 마지 않는 독일에서 살다보면 극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빨갱이 프레임이라구요! 라고 생각만 해왔지 사실 명확하게 어떤 면에서 그런지 불명확해서.. 뭔가 어렴풋하게만 느낀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어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던 다양한 생각들은 이번 강의를 통해 확실하게 그리고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김누리 교수님께서 이야기 해주시는 걸 보고 정말 무릎을 탁 쳤다.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시각. 나는 언제나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고 통일이 되면 분명 한국은 엄청난 문제덩어리, 회생의 기회가 없는 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정말 명확하게 왜 그런건지 통일에 대한 민낯을 보여주셨다.우리는 극단적인 이념의 문제로 진짜 전쟁이 일어난 국가이고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는 이념적의 프레임을 통해 서로를 물고 뜯는데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였다. 불안정한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디에 분노를 해야할지 몰라 서로 총질하고 있는 사회가 바로 남한인데. 이 와중에 통일이라. 통일은 자살행위일 것이다.
거기다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투표를 할때 이리저리 갈리는 남한에 비해 북한이 같은 민주주의 속으로 들어왔을 때 그 표는 한곳으로 몰릴것이고 통일 한국이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북한이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라는 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메르켈도 동독출신. 우리는 아직 북한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다. 북한이란 정권을 어떻게 대하는지만 치고박고 싸우느라 아무도 진정하게 북한이 뭔지. 통일이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될지. 단 한번도 심도깊게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사실 나도 통일에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나도 명확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막연히 두렵고 위협적이고 나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을 통일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모든 사람들 멱살을 끌어다 놓고 이 강의는 제발 들어주세요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부분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찍어주시는 김누리 교수님의 명강의에 덧붙여..
이번주는 뭔일인지 TVN에서는 책읽어드립니다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라는 책을 가지고 강독을 해주는 편이 방영되었다. 이 책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2차세계대전의 독일의 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시각에 대해서 다양한 서평으로 본 적이 있긴 해서 내용은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셀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그저 광산의 노동자에서 나치당에 가입하다가 공무원이 되어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일은 당시 독일 법에 의해서는 합법이었으므로 자신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소름끼치게 법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 법은 독일에선 심지어 합헌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소름끼칠정도로 비인간적이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명분은 명확했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비인간적인 부분은 쉬이 외면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Historisches Museum은 베를린 Unter den Linden이라는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한국식 2층은 독일에 대한 고대사, 중세사가 전시되어 있는데 나는 이런저러한 이유들로 하여금 한국식 1층에 전시되어있는 바이마르공화국 이후 및 현대사 전시를 꼼꼼히 돌아보았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지쳐있던 바이마르공화국을 지나 조금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생겨났을때. 우리 민족끼리 모여 제대로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Nationalsozialismus (국가사회주의, 이하 나치당)가 서서히 독일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다수의 게르만과 수많은 다른 인종이 섞여 있던 독일이란 국가에서 천천히 침습하던. 다수의 게르만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사회를 꿈꾼다는 나치당은 기나긴 인플레이션을 지나 조금 살만해진 대다수의 독일 국민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치당은 계속해서 선전한다. 진짜 순수한 독일인들을 보호하는 진정한 독일을 꿈꾼다고.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조금씩 타국의 사람들이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고 있는 한국에서, 국가는 순수한 한국인들을 위한, 순수한 한국인들만의 복지를 위한 제대로된 국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라고 하면 누구든 확 눈길이 갈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치당은 점점 독일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그리고. 순수한 독일인의 그룹으로 들어와라. 즉 나치당에 들어온다면 결과적으로는 순수한 우리의 그룹이 되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공고한 공동체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동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적이 필요하다. 그 적은 독일에 있는 소수의 타인종이었다. 아주 오래된 시기부터 독일에 터를 잡아 독일어 밖에 하지 못하고 독일에 이미 토착화 된 유대인들도 나치의 시선에서는 타인종이었다. 그들은 순수한 독일인이 아닌 그들을 적으로 삼어 내부의 공고화를 꿈꾸었고 그것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재미있는건 이렇게 힘을 얻었던 나치는 유대인만 죽인게 아니라는 것이다. 순수한 게르만 중에서도 정신적, 육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도 청소(!)의 대상이었다. 그 근거가 참으로 놀랍다. 정신적, 육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을 국가에서 도움을 줄 수 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들어가는 복지예산이 엄청나게 크다. 차라리 이 돈을 모아서 순수한 우리 민족에게 쓰는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그냥 청소되어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 와.. 이런 기적의 논리라니. (당연히 도덕적인 문제로 반발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내는 이들은 나치당에 반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외부적 사인은 다른 질병에 의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극도의 빈곤을 지나왔고 조금 살만해지니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덮친 유럽 그리고 독일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프로파간다였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나치당의 당수인 히틀러가 탄 멋진 자동차 장난감이 뿌려졌고 여자아이들에게는 히틀러 사진이 거실에 달려있는 인형의 집이 인기였다. 유겐트(청소년 나치 그룹) 가입이 되어 받는 하켄크로이츠 완장은 그들에게 긍지가 되었다. 부자들만이 쓸 수 있었던 라디오를 이 시기에 갑자기 싸게 공급이 되면서 모두에게 부자가 된 느낌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이 라디오에는 나치의 프로파간다만이 방송되었다.
이 당시에 미친 독일인들이 세계1차대전을 겪었음에도 왜 다시 전쟁을 일으켰을까? 가 아니다. 이 당시의 일반적인 독일인들이었다면 끌릴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프로파간다가 있었고 반대의견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철저하게 묵살되었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사라져야 하는 적이 있었고 그 적들이 사라진 순수한 우리의 국가가 더 커지는걸 원하였다. 그렇게 세계 2차대전이 유럽땅에서 시작이 된것이다.
얼핏 보아서는 너무도 매력적이고 나의 공동체에 득이 되는 이야기만 하는 그 주장의 내면에 어떠한 무서운 의미가 있는지. 외면하지 않아야 할 지켜야 할 가치가 뭉게지는 위험신호에 민감한 사회가 되어야 이러한 비극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한국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있는걸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매 순간 한국에게 위협신호가 되고 있다. 한국에 점점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그들에 대해서 한국의 치안을 위협한다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시선이 널리 퍼진다. 심지어 한국인 끼리도 남자 여자로 갈려서 싸우고 잘먹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갈려 싸운다. 적이 될수 있는 그룹핑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 그룹핑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타인을 쉬이 적으로 돌리고 타인의 의견은 묵살된다. 조금만 약한 점을 파고들었을 때 다수의 그룹이 1930~1940년대의 나치를 통해 일어났던 일들이 한국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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